2025년 9월 10일, 미국 유타주 유타밸리대학교. 한 보수 정치활동가가 공개 강연 도중 총탄에 쓰러졌다. 찰리 커크(Charlie Kirk), 불과 31세의 나이였다. 단발의 총성이 수천 명 앞에서 울렸고, 미국 정치사에서 또 하나의 정치적 피살이 기록되었다. 이는 단순한 개인 비극이 아니다. 진영 논리에 따른 '극우몰이'가 결국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며, 우리 사회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찰리 커크는 터닝포인트 USA(TPUSA)의 창립자이자 대표로, 청년 보수 운동을 이끌며 트럼프 진영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했다. 그는 대학가에서의 자유로운 토론, 보수적 가치의 회복, 신앙과 공동체의 중요성 등을 역설했고, 때로는 도발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단지 '극우'라 낙인찍는 것은 그가 실천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모두 무시하는 왜곡이다.
JD 밴스 부통령의 회고문은 이 왜곡된 이미지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밴스는 찰리가 자신에게 아무 정치적 힘이 없던 시절부터 진심으로 도와주었고, 토론과 조직, 피드백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특히 커크가 "적대적인 청중 앞에서도 기꺼이 질문을 받고, 관중의 야유조차 제지하며 열린 대화를 이끌었다"는 대목은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닫힌 극우가 아니라, 열려 있는 보수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추도사에서 이를 강조한다. "찰리는 진실과 자유를 위한 순교자였고, 자유로운 토론과 청년 교육의 상징이었다." 그는 커크를 나치나 학살자에 비유해온 급진 좌파의 언어를 "정치 폭력의 직접적 원인"이라 규정하며, 이번 암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닌 조직된 정치적 테러라고 말했다. "그를 침묵시키려던 총탄은 실패했다. 그의 메시지와 유산은 세대를 넘어 이어질 것이다."
이 모든 증언과 추도는 하나의 사실로 수렴된다. 찰리 커크는 혐오로 규정된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받고 응답하며 토론을 실천한 시민 정치인이었다. 그를 '극우'로 규정하고 배제하려 했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 배제의 정당화를 낳는 진영 논리야말로 오늘의 비극을 촉발한 구조적 원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는 더욱 심각하다. 커크가 방한 중 '한국 정부의 교회 탄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는 주장에 대해, MBC를 비롯한 일부 매체는 이를 '미 극우 인사의 주장'으로 축소하거나 희화화하며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메시지가 트럼프 진영 내부에서 공식적인 우려로 공유되었고, 미국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의 발언에서도 한국 정부에 대한 종교·정치 탄압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이처럼 왜곡된 진영 논리에 매몰된 구조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적 다양성, 종교적 신념, 공동체적 가치를 옹호하는 발언이 점점 더 쉽게 '극우'라는 이름으로 침묵당하고 있다. 이념의 이름으로 공격받고, 폭력으로 제거되는 시대. 찰리 커크의 죽음은 미국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를 추모하는 것은 곧 진영을 넘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다양성의 회복을 요청하는 일이 될지 모르겠다.
찰리 커크가 정치적 암살을 당한 것처럼, 이재명 정부 하에 벌어지는 전례 없는 정치적 보복과 종교적 탄압 역시 대한민국이 직면한 현실이다. 미국 트럼프 진영은 이미 이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국제적으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견은 제거되어야 하는가?"
"극우란 이름으로 누구를 말살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