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회담 뒤에 찾아온 미국발 재의 파고

1. 연속된 압박의 신호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제재는 이제 본격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9월 5일, 현대·LG가 운영하는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을 포함해 475명이 불법 비자 문제로 체포되었다. 불과 사흘 뒤인 9월 8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강화가 발표되었다. 배터리와 반도체, 한국 제조업의 두 핵심 축이 연속적으로 압박을 받은 셈이다.

2. VEU 종료와 구조적 제약

이번 조치는 단순 사건이라기보다 구조적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VEU(Validated End-User) 제도, 즉 신뢰성이 검증된 기업에 대해 전략물자 수입 시 개별허가를 면제하던 특례를 종료하고, ‘연간 사이트 라이선스’를 도입했다. 앞으로는 공장 단위로 1년 치 장비·부품·소모품 목록을 제출해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중국 내 공장은 현 상태로만 운영하라”는 원칙을 제도화한 조치로 읽힐 수 있다. 기존 장비의 유지·보수는 허용되지만, 신규 증설이나 미세공정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예기치 못한 고장이 발생할 경우, 허가 범위 밖의 장비가 필요하면 긴급 라이선스를 새로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행정 절차가 지연되면 생산 라인 전체가 멈추는 셧다운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기업 운영의 불확실성을 제도적으로 상시화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3. 외교성과 자랑, 그러나 환상으로

그런데도 이재명 정부는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 “외교성과”라고 자평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도 “오해가 해소됐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연쇄적 제재 조치의 흐름을 보면, 그러한 자평이야말로 환상에 가까웠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한국 산업을 압박하고 있으며, 협상장의 미소 뒤에는 구조적 제약이 촘촘히 깔려 있다. 외교적 수사가 곧 정책의 보장이라는 믿음은 위험한 착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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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 타깃의 가능성

현대차·LG 배터리, 삼성·하이닉스 반도체에 이어 철강·조선·석유화학이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철강은 이미 미국과 무역분쟁의 단골 소재였고, 조선업은 미국 해양전략과 직접 맞닿아 있으며, 석유화학은 중국 공급망과 긴밀히 얽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스타일은 경고 후 즉각 실행으로 이어져 왔다. 배터리와 반도체 제재가 불과 사흘 간격으로 단행된 것도 이 같은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며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중이다.

5. 필요한 것은 냉정한 전략

따라서 한국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산업 전반은 더 큰 충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전략이다. 미국과의 갈등을 무조건 피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위기를 관리할 산업 정책과 외교적 해법을 병행해야 한다. 허상에 기댄 정치적 포장은 국가 전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환상을 좇을 것이 아니라, 냉정한 분석과 치밀한 대비로 대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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