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중동 메시지가 드러낸 위험한 전환

전통적 외교 노선과 균형의 원칙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신중한 균형을 유지해왔다. 민간인 보호와 평화 촉구라는 원칙적 입장은 되풀이했지만, 특정 국가를 직접 비판하거나 중동 현안에 깊숙이 개입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했다.

이는 단순한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현실적 판단이었다. 한국은 중동 지역에서 외교적 네트워크와 이해관계가 제한적이었고, 무엇보다 한미동맹이라는 전략 틀 안에서 미국의 기조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즉, 역대 정권을 막론하고 한국 외교의 전통적 노선은 “중동 개입 최소화, 미국 정책과의 보조 유지”였다.

착시로 포장된 ‘국제적 기류’

그런데 최근 이재명 정부 들어서 이 전통적 노선에서 벗어난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정착촌 건설은 두 국가 해법을 저해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이는 단순히 원칙적 지지 수준을 넘어, 사실상 이스라엘 정책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국내 언론 일부는 영국·호주 등 파이브아이즈 동맹국들이 두국가 해법을 지지한 사례를 끌어와, 한국 정부의 입장이 국제적 기류와 보조를 맞춘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 영국은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하마스의 테러 공격을 명확히 비판하며 균형을 잡았다.
• 호주 역시 노동당 정권 아래에서 두국가 해법을 지지했지만, 미국과의 동맹 관계 속에서 이란·하마스 문제에선 균형을 유지했다.

특히 영국·호주 등은 정착촌 비판을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해온 반면, 한국은 전례 없는 발언을 처음 한 것이다.

그렇기에 정착촌과 관련하여 메세지를 낸 것을 가지고 한국이 국제적 기류에 올라탔다고 포장하는 것은 착시에 불과하며, 오히려 외교적 리스크를 확대하는 행위이 될 수 있다.

안미경중에서 안중경중으로

더 심각한 것은 메시지의 구조적 맥락이다. 조현 장관의 발언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 직후에 나왔다. 이는 한국 정부가 독자적 입장을 세운 것이라기보다는, 중국의 메시지에 보조를 맞춘 듯한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단순한 시기적 우연이라 치부하기 어렵다. 한국 외교의 주체성이 의심받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과 이스라엘–이란 충돌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국제법을 무시한 무모한 전쟁 개입자”라고 비판했다. 이는 집권 여당 핵심 요직에서 나온 메시지로, 개인적 의견이라기보다 정부 기조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연이어 나온 발언들은 한국 외교가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이라는 기존 기조에서 멀어져, 오히려 **안중경중(安中經中, 안보·경제 모두 중국 지향)**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중동 이슈에 성급히 뛰어드는 모습은 의아할 수밖에 없으며, 갑작스러운 전환의 배경에 중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자연스럽게 제기된다.